백야. 밤하늘에 낭만적인 빛의 노을이 진다.
시베리아와 더불어 백야도 단어로만 들었을 뿐 실체를 짐작할 수 없던 것이었다. 몽골로 가던 비행기에서 ‘백야’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막연한 생각이 현실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붉은 별 민박.
백야를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던 곳은 이르쿠츠크 외각의 ‘붉은 별 민박’(내가 머물던 곳으로 그 곳의 주인장은 완공도 안 된 자기 집의 이름을 붉은 별이라고 붙이자고 했다). 그 곳에서는 한가로움이 좋았다. 통나무집의 아득한 정취와 넓은 마당, 그리고 나를 따르던 강아지들의 정겨움까지. 그 곳에서의 시간을 휴식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 무언가가 무엇이었는지는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멀리 떨어진 시베리아였지만 너무 가깝게 느껴졌던 시베리아를 체험하며 느껴졌던,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던 공간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익숙함으로 다가왔던 것에 대한 이율배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매일 저녁이면 집 주인장인 그가 담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술’을 마시며 옛 사랑에 대해 밤늦도록 이야기하곤 했다. 밤늦은 시간이었다 하더라도 해는 여전이 우리를 비추고 있던 시간. 그 곳의 백야는 내가 경험한 첫 번째 백야로 기억된다.
저녁 7시 30분. 오후 5시의 빛을 닮았다.
저녁 8시 10분, 옆 집 아줌마 밭일을 한다.

저녁 9시. 노을이 수줍게 드리운다.
저녁 10시 이후. 내 얼굴도 붉어진다.
해가 졌던 정확한 시간은 언제였을까?
밤 11시 35분. 이젠 자야할 것 같았다.
밤 11시 30분 해가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시계를 보면서 시간대 별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확한 시간을 기록해두고 싶었으니까. 그 곳은 6월부터 섬머 타임이 시작된다고 했다. 한 시간을 땡긴 시간이지만 해는 10시가 넘어서야 졌고, 완전히 어둠이 들이우기까지는 해가 지고도 한 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새벽 4:40분 경에 해가 뜬다고 했다) 태양이 강해 눈을 뜨고 시계를 보면 아침 6시를 겨우 넘긴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백야가 계속되는 여름, 진정한 빛의 유희는 이런 것일까?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미세한 빛의 입자가 내 얼굴에 오랫동안 비추고 있는 느낌을 아직도 지울 수가 없다.
글/사진 안진헌 www.travelr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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