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곳을 칭송하리다.
이르쿠츠크를 떠나기 전 알혼 섬을 찾아야했다. 바이칼 호수 안쪽에 있는 섬 중에 가장 큰 섬으로 바이칼 호수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로컬 버스를 타고 알혼 섬으로 향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알혼 섬을 찾기 때문에 로컬 버스는 의외로 외국인 여행자가 많았다. 영어가 들리는 걸 보면 배낭 여행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섬인 모양이다. 혼자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아침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바지선에 버스를 싫고 호수를 건너 섬의 가장 큰 마을인 ‘후지르’까지 가는 데 7시간이 걸렸다. 공기는 쌀쌀했지만 날은 맑았고 파란 하늘이 어울리고 있었다.



버스를 싫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넌다.
알혼 섬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자 숙소 니키타 게스트 하우스에는 방이 없었다. 성수기인 탓이다. 대신 숙소에서 알선한 민박집에 하루를 묵게 됐다. 알혼 섬 풍경은 황홀했다. 제주도 보다 큰 섬이니 섬의 전체적인 풍경을 단번에 알 수는 없으나, 섬에서 보이는 호수는 잔잔한 바다처럼 다가왔다.


알혼 섬의 중심, 후지르 마을
알혼 섬을 찾은 사람들은
할 일 없이
산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해변에 누워 있었다.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간과 어울리거나 시간과 친구가 되는 것
이외는 없었다.



시간은 흐드러져 있고, 자연은 지천에 널려있었다.
짐을 풀고 숙소 주변을 거닌다. 부르칸 곶 Cape Burkhan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로 작은 바다로 불리는 마로에 모레 Maloe Morel가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한다. 저녁 7시를 넘긴 햇빛이 섬세한 모래 입자처럼 내 얼굴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날은 1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라고 했고, 백야 현상이 절정이 달하는 날이었다.




너무 아름다우면 왜 쓸쓸하거나 슬퍼질까?
숙소에서 제공한다는 저녁을 먹었다. 혼자 먹었는지 어찌 저찌 버스에서 알게 된 여행자들과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좋은데 뭐랄까 어딘가 가슴 한 구석이 비어있는 느낌이랄까?’ 버스에서 알게 된 유럽 여행자들과 은근히 친해보려고 했었다. 알혼 섬에서 백야를 보며 혼자 있는 건 웬지 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다시금 할 일 없는 시간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같은 길을 거닐고 사진을 몇 장 찍는다. 햇볕은 이제 포근한 붉은 빛에서 은근한 회색의 푸른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시간이 몇 시였을까? 이르쿠츠크에서의 일몰처럼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남들도 나처럼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 날은 맥주를 한 병 마셔야했다. 숙소에 딸린 상점에 들어가 수 없이 많은 러시아 맥주 중에 뭔지도 모르는 것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자연스레 발길이 옮겨졌다. 모닥불을 피우고 바비큐 파티를 하려는 듯 웅성대며 시끄럽다. 단체로 온 러시아 관광객들이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고, 덤으로 개별적으로 온 배낭여행자들이 모닥불 옆에 모여 맥주병을 기우리고 있다. 그래도 버스에서 얼굴을 익혔다고 영국 여행자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여행자들끼리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맥주를 들이키며 내일이면 못 볼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비밀 이야기를 꺼내도 됐을련만. 일몰이 어둠으로 바뀌려는 밤 12가 넘은 시간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 했다. 비어있던 옆 침대에 여행자 하나가 도착해 있었고, 장기 여행을 하는 듯 피곤한 그는 내게 인사를 몇 마디 나누고 잠을 청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알혼 섬의 밤이 깊었다.


해가졌다. 그러나 밤 12시가 넘어도 환했다.
알혼 섬을 1박 2일로 다녀오는 것은 섬을 온전히 즐기기에 적합지 않다. 하루의 시간을 더 내어 섬을 둘러보는 투어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할 일 없는 시간과 친구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아침까지도 투어를 신청하려는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전거를 타고 할 일 없는 시간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알혼 섬에서 들지 않았다. ‘할 일 없는 시간을 함께 보내 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무척이나 강하게 들고 있었다. 알혼 섬, 그런 곳은 연인과 함께 가야하는 곳이다. (발리 섬이 그러했든 알혼 섬도 취재라는 명목으로 가야했지만, 그런 곳은 남자 혼자서 할 일 없는 시간과 친해지라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미니버스를 운영하는 집에 갔더니 없을 것 같았던 버스가 있다고 했다. 서둘러 짐을 챙겨 알혼 섬을 벗어 나왔다. 후회가 되지 않더냐고? 나오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알혼 섬에 하루를 더 있었더라면 두 번째 밤이 무척이나 길었을 것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백야로 인해 밤 12시까지 빛이 드리운 알혼 섬의 밤을 할 일 없는 시간과 보내기에는 무척이나 길었을 것이 분명하다. 알혼 섬, 다음에는 그 곳을 누군가와 함께 가리라. 푸른 여름이어도 좋고 하얀 겨울이어도 좋을 것이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이르쿠츠크로 오던 미니버스. 10명 남짓 탈 수 있었던 미니버스에는 스위스 여행자와 일본 여행자가 있었다. 동양인스런 용모의 스위스 여행자가 러시아를 하던 일본 여행자와의 대화를 영어로 통역해 준다. 휴게실에서 잠깐의 인사였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들이 강하게 들던 동행이 되었던 두 명의 여행자. 불운하게도 내가 내려야했던 곳은 종점을 조금 못 미친 ‘붉은 별 민박’이 있던 마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들과 헤어져야 했다. 만약, 알혼 섬으로 가는 버스에서 그들을 만났다면 알혼 섬의 기억은 다르게 쓰여 졌을 것이다.
글/사진 안진헌 www.travelr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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