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끼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5성급 호텔 취재와 달리 레스토랑 취재는 사전에 취재 협조를 구하지 않는다. 음식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취재 협조 공문을 보내고 취재 날짜를 협의하는 절차가 귀찮기도 하지만, 취재 협조를 받고 레스토랑을 취재할 경우 공정한 취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5성급 호텔의 경우 서비스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평가가 내려진 상태라 객실 사진과 호텔 부대 시설을 둘러보면 된다. 호텔의 경우 취재 협조를 받아야 카테고리 별로 객실을 둘러볼 수 있고, 호텔 부대시설도 안내자를 따라 마음 편히 둘러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레스토랑의 경우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 해도 서비스와 음식 맛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냥 손님인척하고 찾아가야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취재원들이 협조적인 것은 아니다. ‘당신들 업소를 책에 소개해 주는데 뭐가 나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전 취재 협조 없이 촬영할 경우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모르기 때문에 레스토랑 관계자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반드시 좋게 쓰이리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경쟁에 심한 대도시의 경우 인테리어나 조리 방법 등이 쉽게 노출 될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촬영에 지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다.
내가 작업하는 책이 통짜 가이드북임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레스토랑 몇 개를 소개하거나 음식 소개를 해야 하는 컬러풀한 책이라면 레스토랑 또한 사전 취재 협조를 받고 진행해야만 원하는 사진과 레스토랑 분위기를 책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가이드북의 특성 상 해당 업소의 특징을 잡아 내 몇 줄로 요약해야 하고, 사진도 레스토랑 느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을 선별하기 때문에, 레스토랑 측에서 원하는 그림의 책이 나오지 않는 것도 큰 매력이 되진 못할 것이다.
물론 마케팅의 중요성을 잘 아는 곳들은 ‘저 인간이 여기 와서 왜 혼자 밥 시켜 놓고 사진을 요리저리 찍는지 쉽게 파악해 내는 곳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급 레스토랑들은 사진 촬영에 민감하다. 그들도 선수들이기 때문에 손님의 행동 상태를 보면 다른 점이 금방 눈에 들어올 것이다.
#1. 푸드 로프트 Food Loft @ Central Chitlom
방콕에서 잘 나가는 쎈탄 백화점에 있는 푸드 코드다. 다른 백화점 푸드 코트와 달리 고급화를 지향하는 곳으로 각 부스별로 유명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음식을 요리한다. 저가 단품 요리를 내놓지 않고 양질의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 백화점 푸드 코트의 편리함과 음식의 맛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곳이다.
미리 돈을 지불하고 쿠폰을 구입해야 하는 일반적인 푸드 코트와 달리, 전용 카드를 지급해 주고 음식을 구매 한 후 푸드 코트를 나올 때 주문한 음식 값을 합산해 페이하는 방식이다. 일반 푸드 코드가 100밧이면 충분하지만, 푸드 로프트에서는 전용 카드로 1,000밧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방콕에 푸드 로프트가 들어섰을 때 인터리어 또한 혁신적이었는데, 그래서 인지 다른 백화점에서 많이 모방하기도 했다.
일단 모른 척 하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니저가 다가와 사진 촬영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더라. 그래도 음식을 고르러 조리대 몇 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몇 컷 더 찍었다. 그리고는 음식을 주문해 테이블에 앉았다. 음식 사진도 필요했던 차라 서빙 된 음식을 근접 촬영하려는데, 이번에는 종업원이 다가와 한마디 건넨다.
“음식은 사진으로 촬영하면 안 됩니다.”
내가 주문한 음식도 못 찍게 하는 이런 엄격한 레스토랑은 처음이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이미 사진을 찍다 매니저에 걸렸던 경력이 있었던지라, 아마 종업원들이 나를 유심히 살폈던 모양이다. 음식이 제대로 넘어갔을 리 없었다.
(촬영 금지를 어긴 건 내 잘못이지만, 솔직히 이 집은 좀 무례했다. 그렇다고 나쁘게만 쓸 수 없는 레스토랑이었으니. 쩝)
원고 마지막에 ‘독특한 발상을 한 탓인지 내부 사진 촬영에 극도로 민감하다. 심지어 자신이 주문한 음식 사진도 못 찍게 하니 도촬하는 기술을 익혀 둘 것.’라고 썼지만, 결국 편집단계에서 도촬하는 기술을 익혀 둘 것이라는 문장을 삭제됐다.
#2. 에라완 티 룸 Erawan Tea Room
에라완 하얏트 호텔에 딸려 있는 라운지를 겸한 레스토랑이다. 애프터눈 티를 마시기 위해 찾는 손님들이 많은 고급 레스토랑. 푹신한 소파에 고급스런 분위기가 좋다. 친구들과 함께 찾았는데, 웬지 사진 한 장을 찍어 둬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다들 ‘디카’를 꺼내 사진을 찍으며 장소를 기념하고 있었다. 옆 테이블은 홍콩 아가씨들, 앞 테이블은 아랍 여성들이 방콕의 더위를 시키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가 사진을 찍으면 매니저가 어디선가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그냥 직감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5성급 호텔 레스토랑이니 촬영 협조를 미리 받는 게 편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것저것 설명해 주며, 내게 사진을 촬영하라며 시간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프레스 킷(브로셔와 사진 CD가 들어 있는 홍보용 파일)을 건넸을 것이다.
그런데 딱히 취재를 위해 들린 것도 아니었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려 했었는데, 은근히 직업정신이 발휘 된 것이다. 사진 한 장 찍어두면 써먹을 데가 있을 것 같은 그런 직감이라고 해두자.
주변을 살핀다. 레스토랑의 느낌을 전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일어서서 뒤를 돌아 사진을 찍으면, 소파와 벽면 장식까지 전체적인 그림이 나올 듯하다. 실내의 밝기를 살피고 카메라 노출을 조정하고 대화를 나누던 친구들 사이에서 불쑥 일어나 셔터를 눌렀다.
‘찰칵!’
1/100초 동안 짤칵하는 소리가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는 레스토랑 내부의 정적이 깨졌다. 아니나 다를까, 매니저 다가온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속으로 외친다. 매니저는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라고 점잔께 한마디를 거들고 갔다.
‘남들도 다 사진 찍던데, 왜 내가 사진 찍으니까 안 된다고 그러냐?’라고 항의해 볼까도 했다. 하지만 그도 분명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들끼리 기념으로 사진 찍는 형태와는 전혀 다른 행동 가짐이 그 짧은 순간에 레스토랑 매니저도 인식했을 테니까!
‘촬영 금지’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선수끼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아 은세공 티 포트에 담겨져 나온 다질링 티를 즐겼다.
글/사진 안진헌 http://travelra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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