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를 가끔 쓸라고 해도 뭐 쓸게 없다.
원고 작업할때의 일상이란게 너무도 단순하야.
-가능하면 하루 10시간 정도 꾸준이 원고를 쓰려한다.
(다행이도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아주 훌륭한 생활습관을 갖고있다.)
요샌 책 작업하면, 잘 아는 동네라서
대충 원고 써 놓고, 취재를 하러가는 방향으로 순서가 바뀌어 있다.
이번 작업도 역시나 원고를 쓰다보니,
관련된 책들을 더 많이 찾아보게 되고,
기존의 작업보다 내용이 깊어진다.
(그렇다고 한 없이 깊어지지는 않을 듯. 정해논 분량이 뻔하다.)
베트남 작업하면서,
한자 표기를 많이 넣을려고하다보니,
이거 관련 정보를 찾는데 너무 시간이 오래걸린다.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수도, '훼 Huế'에 관한 이야기
훼의 응우옌 왕조의 왕궁에 있는 황제의 알현실
아는 분은 아실테지만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옛날의 수도라든지 왕궁, 심지어 황제들의 무덤까지도
유교와 한자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런데, 베트남은 프랑스가 식민지배하는 동안
문자가 어렵다는 이유로 한자 표기를 로만 알파벳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래서 한자 표기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탓에,
역사적인 건물들의 한자 표기를 알아내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패방, 용이 휘감고 있는 석주, 노란색 기와 지붕, 정직탕평..
모든게 익숙하다. 그런데 같은 한자라하더라도 나라마다 발음이 달랐으니....
예를 들어
훼 Huế의 고성을 소개할 경우,
건설 당시에는 Kinh Thành이라고 불렀다.
이건 과거에 표기하던 한자가 아닌 요금 쓰는 베트남어로만 표기한 것인데,
Kinh Thành에 대한 발음은 '낀탄' 정도가 될테고.
'낀탄'의 한자 표기를 찾아내면 京城, 즉 경성이 된다.
한자에 나름 친숙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경성'이라고 하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금방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한자표기까지 함께 써주면 그 도시를 이해하는데 훨씬 빨라진다.
훼의 고성인 '경성' 내부에는 궁궐이 있었고,
그 궁궐은 호앙탄 Hoàng Thành(‘황성 皇城’이라는 뜻) Imperial City이라고 적는다.
뭐 이런식으로 표기하고 설명을 달려니, 원고 쓰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어쩌면 베트남 사람들도 한자로 어찌 쓰는지 모를거란 생각이 든다.)
카이딘 황제릉 내부. 다른 곳과 달리 로코코 양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가묘를 쓰지 않고 유체를 묘 아래에 직접 매장한 것도 다른 황제릉과 차별된다.
그런데 건물의 이름은 당연이 한자로 표기했다.
'계성전'이 아니라 '카이탄디엔 Khải Thành Điện'이라고 읽어야한다.
일찌감치 무덤을 완성해 놓고, 살아 생전에 자기 무덤에서 연회를 즐겼던, 뜨득 황제릉
황제릉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
각각의 황제릉도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는 것.
한국의 예를 들자면
'영조의 무덤'이라고 하지 않고 '원릉'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
베트남도 그들은 어쨓거나 황제라고 불렀고,
(베트남 황제들은 죽기 전에 자기 무덤을 건설했다.)
황제가 승하한 다음에 그가 묻힌 곳을 '**의 무덤'이런 식으로 부르지는 않았을터이다.
(베트남도 강력한 유교 국가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민망(明命帝) Minh Mạng
응우옌 왕조의 2대 황제인 민망 황제(재위 1820~1841년)가 묻힌 곳으로
효릉(孝陵, Hiếu Lăng)이라고 부른다.
근데 발음에 관한 문제가 나온다.
과연 어떤게 더 이해하기 쉬을까?
'히에우 랑 Hiếu Lăng'보다는 효릉孝陵이 더 알아먹기 쉬운데,
베트남 사람들은 '효릉' 이렇게 발음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이것저것 표기를 다 넣어야하는데, 그러다보니 문장이 많이 어수선해진다.
그러나 어쩌랴..그리 될 수 밖에 없으니.
호수 왼쪽에 있는 3단으로 구성된 계단을 오르면 키엠꿍몬(겸궁문, 謙宮門) Khiêm Cung Môn이 나온다. 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궁전처럼 생긴 디엔호아키엠(화겸전 和謙殿) Điện Hoà Khiêm은 뜨득 황제가 생전에 무덤을 찾았을 때 집무실로 사용했다. 승하한 뒤에는 황제와 황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사용된다. 디엔호아키엠 양옆으로는 문관과 무관들이 머물던 건물도 있다. 디엔호아키엠 뒤쪽에는 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던 디엔르엉키엠(양겸전 良謙殿) Điện Lương Khiêm도 있다. 현재는 뜨득 황제의 어머니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변모했다.
"오빠, 달려~"
어느덧 치앙마이 올라온지 한달이 지났다.
다시 글쓰는 기계가 되어 있는데,
아! 이렇게 反-인간적인 삶을 살아도 되는건지.
1년 정도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니,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
글/사진 안진헌 http://travelra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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