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멜라카)
지리 책에 수 없이 나오던,
역사 책에 종종 나오던, 그 이름: 말라카.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를 가르는 말라카 해협의 어원이 된 도시, 말라카.
쩡허(鄭和)가 이끌었던 명나라 선박이 이곳을 지났고(1405년)
포르투갈이 무역항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먼저 발을 들여놨고(1511년)
그리고 네덜란드가 말라카를 점령했고(1641년),
마지막으로 영국의 손을 거쳐(1795년),
현재는 독립된 말레이 연방의 땅이 되었다.
그래서 작은 도시에는 중국, 네덜란드, 포르투갈이 혼재해 있다.
더불어 싱가폴 관광객이 뒤 섞여 말라카도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어 있다.
문화의 다양성은 음식의 선택 뿐만 아니라,
볼거리의 선택도 다양하게 만든다.
네덜란드 때 건설한 Stadthuys 주변의 광장을 거닐 때는,
마치 인도 영화에 나오던 한 장면이 연상됐고(고아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들이 교회당, 광장, 시계탑, 분수대를 중심으로 화면이 그려진다).
차이나타운의 좁은 골목을 거닐 때는 베트남 호이안이 생각났다.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커리 미 Cruuy Mee 咖哩面'라고 적혀 있는데
카레와 면를 적당히 접목해 음식 이름을 만들었다.
커리는 중국어 없으니, 그냥 음가를 따서 咖哩가 됐고,
'미 Mee'는 밀가루 국수로, 호끼안(오늘날의 푸젠성) 사람들이 쓰던 중국 남방(민난어) 발음일 것이다.
근데 왜 '麵'이 아니라 '面'이라고 쓸까 궁금해진다.
동양의 음식이 합쳐진 형태로 똠얌미 Tomyam Mee라고 적었는데,
태국의 똠얌(매콤하고 시큼한 찌개)에 면을 넣었을 것이다.
꾸어이띠아우 똠얌이 말레이시아(또는 싱가폴)에서는 '똠얌미'로 불릴테지.
말라카는 논야 Nonya 음식으로 유명한 도시인데,
중국 화교들이 말레이 사람과 결혼하며 만들어낸 문화가 논야다.
중국 음식이면서도 동남아시아 향신료를 사용해 요리한다.
코코넛 밀크와 고춧가루가 접목된 것이 특징이라고 해야하나.
중국적이면서도 사뭇 동남아시아다운 맛을 낸다.
거리의 이정표는 무지움 Muzium, 폴리스 Polis
이런식으로 그냥 발음되는 대로 영어를 변형하면 말레이시아어가 된다.
영어 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기들의 문자를 보며 갸우뚱거릴지도 모른다.
발음에 강약이 아니라 성조가 들어가는 영어도 화교들이 써 대는 정겨운 문화의 접목이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생긴 일!
아이스크림 가게의 아가씨는
(동양인인 그러나 중국인지 싱가폴인지 화교인지 구분이 안되는) 내 모양새를 보더니,
주문을 받기 전에 ‘내가 당신에게 영어를 쓸까요? 중국어를 쓸까요?’라고 묻는다.
중국의 이슬람이란 주제로 특별 전시를 하고 있던 박물관을 들렸다.
중국에서 이것 저것 가져다 전시하는가보다 하면서 큰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코란을 새긴 중국 도자기들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청나라와 당나라 때는 문화가 융합되어 있었으니, 금방 수긍이 갔지만,
몽골 제국이 중국을 지배하던 원나라 시절에도 코란을 새긴 도자기를 만들었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었다.
호사스런 금판을 망치로 두들겨 음각 판화처럼 만든 코란 경전도 눈길을 끓었다.
말라카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어쩔 수 없이 역사 이야기가 등장해야 할 것이지만,
이번에는 그냥 거리를 걸으며 느낌대로 사진을 담았다.
밤에 한 번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밤길을 거닌다.
<말라카 차이나타운 China Town>
<말라카 네덜란드 광장 Stadthuys>
<말라카 포르투갈 언덕 Porta de Santiago>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말라카는
옛 도시가 그대로 보존 유지되고 있고,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
며칠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말라카의 골목을 천천히 거닐거나,
옛 건물을 개조한 중국 풍의 찻집이나 강변의 레스토랑을 들락거리며,
아늑한 시간을 보냈다.
도시가 작아서 반나절이면 둘러 볼 수 있는 곳이지만,
같은 거리를 반복해서 돌아다녀도 나쁘지 않았다.
지도에 의존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걷다보면,
지나쳤던 길로 되돌아 오곤 했는데,
길을 잃어 버렸다고 해도 다시 길을 찾게 되니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말라카 같은 아담한 역사 도시들은
떠날 때가 되면 항상 아쉬움이 쌓인다.
글/사진 안진헌 www.travelr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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